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라 왕조 (문단 편집) === 부흥기 === [[978년]], 비그라하팔라 2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마히팔라 1세가 위축된 제국의 황제로 즉위했다. 마히팔라 1세는 유능하고 정력적인 인물로, 오랜 시간 동안 유약한 황제들에 의해 쇠퇴했던 팔라 왕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히팔라 1세는 즉위 직후에 곧바로 제국 동쪽의 [[벵골]] 일대로 원정을 떠났다. 목표는 다시 벵골 전역을 제국의 손에 넣는 것이었다. 마히팔라 1세의 지도 아래 팔라 왕조는 옛 수도 가우다를 수복한 후 3년만에 벵골 전역을 다시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간만에 국력이 돌아온 만큼 마히팔라 1세는 내정에도 많이 노력하여 수리 및 종교 시설을 확충했다. 마히팔라 1세 치세에, 팔라 왕조에 호재가 찾아왔다. [[1001]]년에,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거점으로 한 [[투르크족]] 왕국 [[가즈니 왕조]]의 술탄 [[가즈니의 마흐무드]]가 인도 원정을 시작한 것이다. 1001년에 시작된 술탄 마흐무드의 북인도 원정은 20~30년에 걸쳐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팔라 왕조 서쪽의 여러 힌두교 왕국들이 전멸했다. 대표적으로 팔라 왕조의 팽팽한 호적수 [[프라티하라 왕조]]가 이 시기에 술탄 마흐무드에게 짓밟혀 당시 수도 [[카나우지]]만 간신히 남긴 채 조금 더 존속하다 [[1036년]]에 멸망을 맞았다. 하지만 마흐무드의 군대는 팔라 왕조와 맞설 만큼 깊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마히팔라 1세 황제는 북인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참으로 오랜만에 팔라 군대가 [[갠지스 강]]을 건넜고 [[바라나시]]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반대로 악재도 있었는데, 인도 최남단의 [[촐라 제국]]이 전성기에 들어선 것이다. 촐라 왕조 황제 라젠드라 1세는 [[힌두교|종교적인 이유]]로 [[갠지스 강]] 일대를 정복하고 싶었기에 [[1021년]]에 대군을 이끌고 팔라 왕조의 남부인 [[오디샤]]로 진입했다. 팔라 왕조의 봉신들이 나섰으나 모두 패했고 마히팔라 1세 본인이 이끄는 군대 역시 패배했다. 라젠드라 1세는 이 지역을 지배하려 하였으나 마히팔라 1세는 패배 후에도 완강한 저항을 이어갔고, 이 때문에 촐라 왕조의 영구적 점령 시도는 실패했다. 그래도 라젠드라 1세는 많은 물자를 노획했으며 갠지스 강의 물을 뜨고 팔라 왕국 내의 브라만들을 잔뜩 납치한 후 돌아갔다. 비록 촐라 왕조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히팔라 1세의 치세에 팔라 왕조는 위세를 회복할 수 있었으며 [[1038년]]에 마히팔라 1세는 눈을 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